복사기를 떠나보내며...
복사기를 떠나보냈습니다. 예배당 건축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장만하였으니 족히 15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문서 선교에 한 몫 단단히 했는데 이제 그 수명이 다해 결국 폐기하게 되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복사기 자체의 수명이 다한 것은 아니라 중요 부품 하나의 수명이 다한 것입니다. 전에 쓰던 복사기부터 이 복사기 구매와 현재까지 계속 도움 주셨던 양광교회 이석환 장로님이 부품을 구하려고 여러 곳에 수소문하였지만 결국 구하지 못하여 눈물을 머금고 폐기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부품 하나 때문에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니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큰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제품을 만들고 팔아야 세상이 돌아가고 기업은 수익이 나니, 사업가 입장에서 보면 오래된 물건을 마냥 고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복사기라는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시스템, 상업주의와 소비주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좋고 편리하고 새로운 기능이 부여된 기계를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기술 혁신과 사업성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늙어서 퇴역하는 복사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저의 모습,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로 기력을 잃어가는 지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좀 씁쓸합니다. 그래도 복사기가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했던 것처럼 저도 제게 맡겨진 시간을 잘 채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