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십중팔구가 광고 전화이기에 망설이다가 핸드폰 번호라 혹시나 하고 받았습니다.
수화기에서 힘들어 기진맥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남자는 일 하다가 양쪽 무릎을 다쳐서 생계가 어려운데 공황장애까지 와서 힘드니 도와달라는 말을 장황하게 하였습니다. 아… 이럴 때는 참 난감합니다. 힘겨운 삶을 사는 이웃의 상황을 듣는 마음은 무척 아프지만, 이런 전화 한 통에 선뜻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죄송하지만, 전문적으로 도움을 주는 곳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제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외마디 소리를 치더니 전화를 끊었습니다.
"꺼져!"
순간 당황스러우면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 남자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나의 미지근한 반응에 화가 치밀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돈을 뜯어낼 악한 심산이었던 것일까? 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서 따질까, 나도 같이 험한 말을 해줄까, 아니면 점잖게 타이를까? 여러 생각이 뒤엉켰지만 네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다양한 상상만이 남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냥 '허허'하고 혼자 헛웃음을 짓는 것으로 넘기기로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교회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장발장에 나오는 신부처럼 알면서도 속아주었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교회를 부당한 돈벌이 대상으로 여기는 심보에 철퇴를 가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값싼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볍고 쉽고 만만하게 봐도 되는 은혜로 만든 것이 교회 자신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인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상대에게 뭔가를 바라고 기대하면서 전하는 복음이 될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