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조립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얼마 전 장인어른께서 저를 찾으셨습니다. 컴퓨터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장인의 컴퓨터 담당입니다. 가 보니 저장장치가 사망하였습니다. 아버님은 이참에 부품을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으시다고 하십니다. 하필 명절 연휴 앞둔 시점에 저만 바라보시는 성격 급하신 아버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서둘러 부품 주문하여 퀵서비스로 받아 조립하고 운영체제를 설치하는데 이상하게 안 됩니다. 꼬박 이틀을 낑낑댔는데 도저히 안 돼서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제 생각과 맞지 않는 부품을 주문하여 결과적으로 부품 하나가 더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연휴 첫 날 혹시나 하고 용산에 나가보니 상가는 다 닫았는데 좌판을 벌여놓고 파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서 다행히 부품을 사 왔습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 조립과 설치를 마치고 갖다 드렸습니다.
컴퓨터 조립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컴퓨터를 조립해주고 가끔 용돈벌이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마지막으로 조립했던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그 사이 부품들의 성능도 좋아지고 이름도 낯선 새로운 기능들이 많이 첨가되었습니다. 그만큼 부품 간 호환성도 까다로워졌지요. 마음이 급해서 성급했던 점도 있지만 달라진 부분을 제가 미쳐 확인하지 않은 것이 큰 실책이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시대가 바뀌고 있으며 이제 나 자신도 그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서글픔이 느껴졌습니다. 아들이 "늙음도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길래 "그 정신력을 잃어가는 게 늙음"이라고 대꾸했습니다. 뒤처진다는 생각은 두려움을 생산합니다. 그러나 또한 자신의 시간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도 삶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건 저나 사람만의 화두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