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문학가 단테가 묵상과 기도를 위하여 수도원 문을 두드렸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안에서 수도사가 물었다.
“이 늦은 밤에 당신은 무엇을 원하시오?”
단테가 대답했다. “예, 평화를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잠시후 단테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수도사가 물었다. “당신은 왜 문을 두드리시오?“
단테가 말했다. ”평화를 주고 싶습니다“
그 때 수도원 문이 열렸다.
평화는 찾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평화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로마식 평화와 예수식 평화입니다. 로마식 평화는 자기를 위하여 남을 죽이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천 년 동안 군대를 통하여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평화를 만드신 방법은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박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방식은 남을 위해 자기를 죽이는 방식입니다.
에베소서 2:14절 말씀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관계를 만들면 좋은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관계 변화의 핵심은 자기 포기입니다. 자기 포기와 자기 희생이 좋은 관계를 만듭니다. 평화는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며 그 좋은 관계는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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