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기자가 구세군 창립자인 윌리엄 부드 대장에게 물었다. “다가오는 미래에 닥쳐올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이겠습니까?”
마침 윌리엄 부드는 나이가 많아 임종을 가까이 두고 있을 때였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대답했다. “이제 세계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위험은 중생 없는 용서를 전하는 철학적 기독교입니다. 추상적인 지식만을 전하는 말만 하는 철학적 기독교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라고 하지만 그 교회에 가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없는 정치, 지옥 없는 천국을 말하는 잘못된 교리, 이런 것들이 앞으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 대해서 몇 가지로 큰 오해가 있습니다. 에밀 브루너의 <교회의 오해>라는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첫째, 교회를 학교(institute)로 오해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그룹별로 여러 가지 성경 공부를 가르치고 배우지만 그것 자체를 교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공부와 교회는 별개입니다. 진리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해서 교회를 학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헬라식의 판단입니다. 둘째, 친교(koinonia, fellowship)하는 곳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며 친교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은 망상입니다. 물론 성도의 교제가 있지만, 이것이 결코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세째, 교회를 자선사업 단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를 향하여 “도대체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교회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 야단을 합니다. 교회는 구제할 뿐이지 구제를 위한 기관은 아닙니다. 넷째, 불의에 항거하는 어떤 저항단체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의를 반대하고 따르지 않지만 저항하여 혁명을 꾀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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