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때 이조판서 이승소는 판서 벼슬에 있으면서도 겨우 초가삼간에 살았다. 임금이 불러 공사를 의논하는 자리에 당시 병조판서이던 이모가 입궐하였다. 병조판서는 이조판서와 앞뒷집에 사는 사이였다. 그런데도 이조판서 이승소는 병조판서를 보고도 모르는체 했다. 세조왕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조판서는 병조판서를 모르는가?"라고 물었다.
이조판서 이승소는 임금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지만 모릅니다!"
조정에 판서라고는 6명이니 모를 리가 없다. 왜 모른다고 했을까?
병조판서가 어느날 누각같이 큰 호화주택을 짓는지라 이승소가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주택 사치를 한다는 건 그만큼 벼슬을 모독하고 백성의 원성을 일으키니 삼가하라고 충고를 했다. 그런데 병조판서는 선비로서의 정신적 기틀이 잡히지 않았던지 이 충고를 묵살하고 그 집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는 이조판서 이승소는 만백성에게 욕먹는다고 충고를 한 것을 어기는 병조판서를 사귈 만한 선비가 못되며 소인으로 간주하고 알고도 모른체 한 것이다. 이 사연을 알고난 세조는 알면서도 모른다는 말을 씀으로 선비정신에 어긋난 행위를 바로 잡는데 힘썼다고 한다.
서로의 지난 날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편하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어떤 일로 헤어진 후 사이가 서먹서먹해졌는데 시간이 지나 잊혀질만 한데 피치 못할 일로 다시 만나야 할 때 '알지만 모르는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마음을 터 놓기보다 더 힘든 관계입니다. 헤어져지냈던 기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헤아릴 사이도 없이 감정은 헤어졌던 때의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사이는 화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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