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마을에서 존경 받는 훈장 선생님을 찾아와 물었다.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마을에서 제일 유식한 분이니, 그의 가르침을 받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안 지내도 되네."
그 얼마 뒤에 다른 청년이 와서 또 물었다.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도 되겠지요?” 훈장 선생님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응, 지내게.”
청년이 물러가자, 같이 앉아 있던 친구가 선생을 책망하였다. “도대체 똑같은 일에 다른 이야기를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얘긴가?”
훈장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하! 그 사람들이 묻는 말을 못 들었나? 먼저 녀석은 안 지냈으면 하고 묻는 거였고, 나중 사람은 지내기 위한 물음이었어. 제사는 지내는 사람의 정성이지, 정말로 영혼이 와서 먹는지 않는지 누가 알아? 지내기 싫은 사람에게는 지내지 말라 하고,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지내라고 했는데,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전능하신 그 분 앞에서 마음에 없는 말이나 정성이 빠진 예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습관적으로 외치는 소리나 의미없는 몸짓은 가증스러운 것이겠지요. 마음 먹은 대로 하십시오. 그것이 피차에 속 편한 일일 것입니다. 가면을 많이 쓴 사람일 수록 보여주고 싶은 명함이 많습니다. 명함에 직책이 많을수록 앉은 자리가 불안한 증거이겠지요.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는 홀로서야 합니다. 위기의 강은 홀로 건너야 합니다. 사람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인맥을 과시하거나 개인의 자랑거리를 늘어놓을수록 지금 그 인생이 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홀로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은 불안정하고, 허약한 자기 자신을 대면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홀로 있게 될 때 자신에 대해서 정직해집니다. 그때가 그 분을 만날 기회입니다.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내 과거, 치부, 내 모든 약점들을 그 분 앞에 정직하게 드러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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