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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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15:13

승려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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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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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에 입국한 이후, 처음으로 메콩강 근처의 여행자 거리에 나와 보았다. 락다운 기간이라 돌아다니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막상 직접 마주한 여행자 골목은 그야말로 텅 빈 거리로 변해 있었다. 2년 전에 왔을 때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던 낭만적인 정취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폐업한 상점들로 즐비한 골목. 한낮의 뜨거운 태양만이 그나마 서글픈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때마침 나의 눈을 사로잡은 두 사람이 있었다. 진한 주황색 도포로 몸을 휘감은 두 분의 승려였다. 스님들은 내 옆을 지나더니 선명한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천천히 시야로부터 멀어졌다. 주황색 도포가 어찌나 눈에 띄던지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두 개의 점이 되어가면서도 주황색이 여전히 반짝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구나. 이 곳은 불교의 나라였지. 생각해보니 동네마다 멋들어진 절이 서 있고, 집집마다 작은 제단에서 향을 피우는 라오스였지만 승려들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인지 그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다. 허나 그것 또한 핑계일 뿐, 결국 내가 워낙 불교에 대해 문외한인지라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 한국에서 부터 언제 한번 불교를 진득하게 공부해 보겠다고 말만 할 뿐 아직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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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불교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것은 2019년 성탄절 새벽이었다. 그 때 나는 루앙프라방에 머물고 있었고, 여행자로써 탁밧(탁발)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에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하였다. 탁밧은 승려들이 매일 아침 절 주변을 돌면서 사람들로부터 공양을 받는 일종의 종교의식이다. 루앙프라방의 탁밧은 특히 유명했기 때문에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절 주변의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스님들께 공양을 하기 위해 먹거리를 준비해서 정성스레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나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카메라를 매만지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성탄절 새벽이었지만 어김없이 승려들은 줄을 지어 탁밧순례를 하였다. 이 날 인상적인 장면은 번쩍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조명을 배경으로 스님들이 탁밧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기예수가 오시는 그 새벽에 기독교는 번쩍이는 장식으로만 남아있지만, 이 땅의 불교는 실제로 걷고, 사람들을 만나며, 나눔의 행진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장면이었지만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기독교인인 내 눈에만 유독 그렇게 보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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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공양을 드리는 사람들의 줄 끄트머리에서 십여 명의 아이들이 구걸을 하듯 바구니를 내밀고 있었는데, 탁밧을 하던 스님들이 자신이 앞서 받은 음식을 아이들의 바구니로 다시 넣어주는 장면이었다. 아니 내 눈에는 그것이 그냥 넣는 행위가 아니라 마치 무엇인가를 다시 되돌려주는 것으로 보였다. 라오스에서 종교와 일상은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도가 담긴 공양이 스님들을 통하여 다시금 가난한 아이들에게 전달되며 자연스럽게 나누어지고, 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매일같이 종교적 의례인 탁밧이 진행되고, 이와 더불어 자연스러운 나눔이 매일같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땅에서 과연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탁밧을 마치고 다시 절로 되돌아갈 때 쯤 스님들의 바구니는 거의 비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빈 바구니를 들고 절을 향해 들어가는 승려들의 뒷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루앙프라방에서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여행자 거리에서 마주친 두 승려의 뒷모습이 사뭇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라오스에 정착중인 나로서는 앞으로 차근차근 불교에 대해서 심도 깊게 공부해 보려고 한다. 일단 라오스 불교가 속한 <상좌부 불교>가 무엇인지, 또 기독교의 사순절기와 비슷한 이 곳 불교의 <카오판사와 억판사>에 관해서, 마지막으로는 공산혁명에 가담했던 소위 ‘전투적인 불교’에 대해 우선적으로 학습하고자 한다. 그 외에도 갈 길이 멀고 험하겠지만 한 걸음씩 걸으며 이웃종교와의 깊이 있는 대화를 도모해보고자 한다. 

좋은만남교회 교우님들에게도 일상적 영성과 나눔의 삶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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