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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한 무명인의 십자가 처형


희망은 항상 역사가 아니며 과장도 아니다. 이 경우, 이전에도 이후에도 종종 그런 것처럼 공포가 역사이다. 
- 존 도미니크 크로산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 예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마치 대서사극처럼 펼쳐진, 예루살렘 입성, 적대자들과 그들에 대한 도전과 그들의 살인 음모, 제자의 배신과 체포, 고문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3일 후의 부활 등 예수의 마지막 날들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를 만들어내기 위해 잘 수행된 성공적인 계획의 결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우리의 대승리이고 경축해야 할 일이지 비극이 아니며, 부활은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의 첫 추종자들이 실제로 그의 죽음을 경험한 형식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 후 추종자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적대감이 컸던, 한 세대가 지난 후의 저자들과 신학자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교회는 항상 이런 전후 문맥을 빼고 철저히 역사적이라고 전제하며 예수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이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결과는 예수 죽음의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는 반셈족주의라는 거짓된 유산과,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닌 신의 죽음에 관한 이 이야기가 돼버려 참된 인간 경험과 연결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역사적 장면 속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결함이 많다. 우리는 이런 성경 이야기들과 전승들이 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시도라는 맥락에서 읽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역사가 아니고 일종의 해석이다. 그리고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죽음 바로 그 사건에서 시작해야 한다.

◆ 십자가 처형  예수가 유월절 즈음 예루살렘에서 로마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명령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십자가 처형은 당시 제국에 저항하는 선동에 개입한 소작농들을 처형하는 로마의 전형적인 국가적 폭력 수단으로, 공포심을 유발하고 겁박하는 최상의 무기였다. 당시에는 아이를 포함한 3천6백 명이 동시에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 즉 예수를 처형한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인이었다. 
이는 예수의 메시지가 종교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당시 황제는 신의 아들로 간주하였고 세금은 제사장에 의해 징수되었기에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제국, 새로운 왕국은 정치적인 체제와 분리된 종교적 선동이 아니었다. 여기에 더해 예수는 로마의 평화에 무모하게 도전했던, 별 볼 일 없는 무명의 한 소작농에 불과했고 하나의 경고로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이다. 죽어가는 과정이나 죽은 이후의 매장 되지 못한 사체 처리 등이 공포감을 더하여 또 다른 선동자의 출현을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십자가 처형  동료들인 장애인, 성매매 여성, 버림받은 사람들, 무두질하는 사람들, 어부들을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무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한 무명인이 성전에서 격노했다. 성전 당국자들과 결탁한 로마 권력은 한 소작농, 무명인에 지나지 않은 그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고문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아마도 시신은 다른 시신들 더미 위에 던져져 개와 새들의 먹이가 됐을 것이다. 교회에 익숙한 경건한 교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뇌와 비통함이 가득한 폭력적 사건이었다. 
이런 죽음 속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예수의 처음 추종자들이 직면했던 도전이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 유대교 전통 안에서 그들이 이 죽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 것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성찰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 이야기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목적과 절망에서 구해내는 어떤 것으로 만들었다. 별 볼 일 없는 한 무명인의 죽음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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