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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3)


(이어서) 세 종교 모두의 중심에 있는 신념은 인류 가운데 하나의 특권적 위치, 즉 사랑받는 아들, 선택된 민족, 진리의 수호자, 구원의 문지기가 있다는 신념이며, 그 특권적 위치를 위해 서로 경쟁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가장 실존적인 충돌이다. 왜냐하면 관건이 되는 것이 가장 귀한 선물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한 집단의 승리는 다른 집단의 치욕적 패배를 의미하며 영구적인 싸움으로 이어질 복수를 요구한다. 리브가가 임신 중에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신탁(창세기 15장 13절)이 서로 지기 싫어하는 형제의 충돌과 긴 싸움을 암시한다. 이것이 세 종교의 역사적 관계였다.
기독교는 유대교를, 이슬람은 기독교와 유대교를 모두 이겼다고 믿었고 자신이 아브라함 계약의 유일한 상속자라고 믿었다. 이 싸움은 잠시 멈출 수 있지만, 상황이 종교적 부흥에 유리해지면 언제든 다시 살아날 준비가 되어 있고 각 종교는 다른 종교를 부인함으로써 자신을 정의하고 방어한다.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관계가 폭력의 일차적 원천이며 폭발의 때를 기다리고 있음을 드러냈다. 신학자들은 이런 긴장 관계는 우상숭배와의 싸움에 몰두했던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탄생하면서 시작됐다고 본다. 그러나 창세기는 이미 유대교 자체 안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세상을 사랑과 용서로 창조하시고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지으신 하나님이 나는 사랑하지만, 당신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는가?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관계는 식량 공급의 제한 때문에 존재한다. 인간 사회의 라이벌 관계는 재물과 권력 같은 물질적인 요소들이 언제나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가족 안의 라이벌 관계는 부모들의 편애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도 공급이 제한되기 때문에 나의 것을 빼앗아 당신에게 주시는 것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히브리성서는 형제자매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만약 형제자매의 라이벌 관계에 대한 창세기의 이야기가 우리가 이해한 것과 전혀 다른 뜻이라면, 보이는 것과 다르게 표면 아래 또 다른 단계를 드러내려고 의도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폭력을 승인하는 대신에 해체하고 뒤엎고 도전하고 마침내 대체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전혀 다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실은 보다 더 근원적이고 다차원적인 변혁의 문서라면 어찌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무슬림은 각자의 종교 전통 관점에서 이 이야기들을 읽어왔기에 이런 질문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21세기는 우리에게도 우리 자신의 관점뿐 아니라 다른 종교의 관점들도 진지하게 검토하도록 요구한다. 세상은 변해 세 종교의 관계는 전지구적인 관계가 되었고 서로의 운명은 연결되었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더 이상 제국을 지배하지 않고 유대인들은 신화의 시대처럼 고향 없이 떠도는 존재들이 아니라 국가를 세웠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서로 존엄한 동등성을 지닌 사람들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고통을 겪는 영혼의 침묵 속에서 모든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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