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완결도서 모아보기

[예수와 권세들] [수난을 넘어서] [원복]
[문명의 위기와 기독교의 새로운 대서사]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조회 수 1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gods_name.jpg

8장  역할 바꾸기 (4)


(이어서) 베냐민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유다가 자기를 종으로 삼아달라고 간청한 것은 애당초 요셉을 (죽이지 말고) 노예로 팔자고 제안한 것이 유다이기 때문이다. 유다는 똑같은 상황에 처하자 이제는 동생을 노예로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유다는 완전한 회개를 위한 시험을 통과했고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두 번 선언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50:19~21) 창세기는 이처럼 화기애애한 말로 끝난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함께 했다고만 하고, 에서와 야곱은 서로 화해의 포옹을 하지만 각자 제 갈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는 전체 화해 과정을 치밀하게 들려주며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간다. 문제는 용서(forgiveness)가 아니라 회개(repentance)이다. 용서는 쉽지만, 성격이 진정으로 바뀌는 회개는 어렵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는 악을 행할 수 있는 자유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자유의 하나님은 자유로운 인간의 자유로운 예배를 원하신다. 오직 자유를 지닌 존재만이 참된 ‘타자’이며, 타자의 자유와 존엄성은 하나님의 프로젝트에서 핵심이다.
인간의 자유는 운명과 팔자, 신들이나 별들에게 달려 있다는 말로 부정되었다. 또 하나님의 예정 탓이라거나(칼뱅), 물리적 결정론(스피노자), 경제적 힘(마르크스), 아동 초기의 경험(프로이트), 유전적 요소들(신다윈주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히브리성서는 그런 결정론에 맞서서 자유에 대한 믿음,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단언한다. 회개는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히브리성서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인류의 열쇠로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믿음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을 넘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 이야기를 전해준다.
요셉 이야기는,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관계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며 끝난다. 우리는 변할 수 있으며, 회개하고 성장할 수 있다. 요셉의 용서 선언은 역사를 새로운 틀 속에서 바라보는 종교적 비전, 복수와 보복의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비전이다. 진정한 자유는 미래에 대한 선택의 능력 너머로 확장돼,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고통의 유산을 치유하는 자유가 된다. 창세기는 실수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실수들을 통해 우리가 변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역할 바꾸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에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내가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속한 ‘우리’와 내가 속하지 않은 ‘그들’과 타자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은 내면으로부터 다른 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하였다. 요셉은 역할 바꾸기를 통해 형들에게 타자됨을 교육하고 있다. 우리가 악을 자행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희생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경험할 때다.
요셉 이야기의 탁월한 문학적 기교는 모순어(한 단어가 두 가지 서로 모순되는 의미를 가짐)라는 희귀한 언어적 현상에서 볼 수 있다. 히브리어 어근 n-k-r은 ‘알아차리다’와 ‘낯선 자’를 동시에 뜻한다. 이 모순어는 ‘인간은 친구들인가, 낯선 자들인가, 형제들인가, 타자인가?’라는 중심질문을 던진다. 창세기는 가장 깊은 의미에서 알아차림과 알아차리지 못함, 즉 타인을 위협으로 볼 것이 아니라 타인의 존엄성을 기꺼이 인정할 마음에 관한 것이다. 요셉은 형들로 하여금 형제가 낯선 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낯선 자도 형제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모든 인류가 부모이신 하나님 아래 가족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임을 말해준다. 타인들이 형제가 되고 갈등이 화해로 변할 때, 우리는 가족으로서 사회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며, 또한 구원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

  1.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4장 희생양 (1)

    4장 희생양 (1)  우리는 서로 혐오하기에 충분한 종교를 갖고 있지만, 서로 사랑하기에 충분한 종교는 갖고 있지 않다. - 조나단 스위프트 이슬람계 언론의 많은 기사가 유대인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일정한 패턴에 따라 ...
    Date2023.04.08 By좋은만남 Views7
    Read More
  2.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3장 이원론 (4)

    3장 이원론 (4)  (이어서) 도덕이 패배하는 첫 단계는 종족학살의 서막인 비인간화이다. 종족학살 범죄자들은 그 대상이 자신과 인간성을 공유하지 않으며 바퀴벌레나 기생충, 암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멸절시켜야 할 대상으로 본다. 멸절수용소에 있던 나치 ...
    Date2023.04.01 By좋은만남 Views6
    Read More
  3.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3장 이원론 (3)

    3장 이원론 (3)  (이어서) 정신분석학파는 분리와 투사 과정을 강조했다. 사람이 성숙하면 자기나 자기 가족이 착할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어리거나 인격 장애가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에는 선과 악을 두 차원에서 함께 보는 통합...
    Date2023.03.25 By좋은만남 Views6
    Read More
  4.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3장 이원론 (2)

    3장 이원론 (2)  (이어서) 페르시아의 통치는 알렉산더 제국의 통치로 이어졌고 다시 로마의 통치로 이어졌으며 많은 유대인이 그리스화 되었다. 바로 이런 시점에, 아마도 기원전 125년경에, 제사장 집단 하나가 예루살렘을 떠나 사해의 쓸쓸한 광야에 살면...
    Date2023.03.18 By좋은만남 Views5
    Read More
  5.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3장 이원론 (1)

    3장 이원론 (1)  그가 짐승, 해충, 벌레가 될 때까지 / 그의 온갖 특징을 과장하라./ 그 배경에는 옛날 옛적부터의 악몽들,/ 곧 악마들, 귀신들, 악의 앞잡이들로 채워라. / 네 원수의 모습이 완성되면, / 너는 죄의식 없이 죽일 수 있게 되고 / 부끄럼 없이...
    Date2023.03.11 By좋은만남 Views9
    Read More
  6.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2장 폭력과 정체성 (4)

    2장 폭력과 정체성 (4)  (이어서) 처음 만나는 이런 문명 질서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종교를 대체했던 민족주의, 공산주의, 인종이라는 대체물이 실패한 끔찍한 트라우마에 비춰보는 길이다. 우리는 1970년대 이후 개인주의의 욕구불만 시대를 살아가고 있...
    Date2023.03.04 By좋은만남 Views7
    Read More
  7.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2장 폭력과 정체성 (3)

    2장 폭력과 정체성 (3)  (이어서) 종교는 또한 신뢰를 창조한다. 장거리 무역 상인들은 상호적 신뢰를 발전시켜 종교적 형제애를 창조하였고 합의에 대한 증인들로서 신들에게 호소했다. 종교윤리학이 가진 권위에 대한 존중, 충성, 거룩함에 대한 인식 등의...
    Date2023.02.25 By좋은만남 Views6
    Read More
  8.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2장 폭력과 정체성 (2)

    2장 폭력과 정체성 (2)  (이어서) 우리가 잠재적으로 폭력적인 이유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른 집단과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집단 간의 폭력이 집단 내부의 연대감과 응집력을 키우고 다른 외부 집단에 대한 ...
    Date2023.02.18 By좋은만남 Views3
    Read More
  9.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2장 폭력과 정체성 (1)

    2장 폭력과 정체성 (1)  그렇다면 인간이란 이 무슨 키메라(사자의 머리,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불을 뿜는 괴물)인가! 얼마나 새로움이며, 괴물이며, 혼돈이며, 모순덩어리며, 불가사의인가! 모든 것을 판단해볼 때, 미천한 벌레, 진리의 보물창고, 불...
    Date2023.02.11 By좋은만남 Views4
    Read More
  10.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1장 이타주의적인 악 (4)

    1장 이타주의적인 악 (4)  (이어서)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현실에서 폭력적 충돌로 이끄는 신학은 다시 검토해야 한다. 신학 작업을 새로 하지 않는다면, 테러에 계속 직면하게 된다. 테러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고 군사적 수단만으로는 종...
    Date2023.02.04 By좋은만남 Views7
    Read More
  11.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1장 이타주의적인 악 (3)

    1장 이타주의적인 악 (3)  (이어서) 누가 이타주의적 악에 대응할 것인가? 작가, 영화감독, 교황, 수녀, 기자 등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작업 때문에 암살, 총기난사, 방화 등의 폭력에 직면하였다. 이타주의적 악에 대해 가장 큰 소리로 대응하는 사람들은 9....
    Date2023.01.28 By좋은만남 Views4
    Read More
  12.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1장 이타주의적인 악 (2)

    1장 이타주의적인 악 (2)  (이어서) 나치 전범들은 증오심이 아니라 정부의 명령에 충실한 얼굴 없는 관료들이었으나 오늘날의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의 범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비디오와 소셜미디어 기술을 이용하며 꾸란에서 금지한 행동을 하면서도 양심...
    Date2023.01.21 By좋은만남 Views5
    Read More
  13.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1장 이타주의적인 악 (1)

    1장 이타주의적인 악 (1)  인간이 종교적인 확신에서 악을 행할 때보다 더 완벽하고 즐겁게 행하는 때는 없다. - 블레즈 파스칼 종교가 인간을 살인자들로 둔갑시킬 때, 하나님은 통곡하신다. 첫 인간들이 명령에 불순종하고 살인을 저지를 때 하나님은 사람...
    Date2023.01.14 By좋은만남 Views1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