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권력의 포기 (4)
(이어서) 아브라함의 종교와 연관된 정치에서 가장 재앙적인 형태는 이원론과 같은 원천인, 묵시론적 정치, 즉 마지막 날들의 정치형태다. 묵시론은 정상적인 역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비록 차질이 생기고 패배할 때가 있을지라도, 마침내 의로움이 보상받고 악이 패망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내는 고전적인 예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묵시론은 오랜 세월 기다려 왔던 구원을 가져오지 못한 정상적인 역사에 대한 절망의 목소리다. 우주는 하나님과 그 원수들 사이의 충돌이며, 그 마지막 대결에서는 세상의 기초가 흔들린다,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될 것이며, 악은 사라지고 역사는 그 모든 흥망성쇠와 절망과 함께 끝장날 것이라는 게 묵시론의 결론이다. 히브리성서의 다니엘서와 외경들, 쿰란 종파와 요한계시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이런 묵시론이 이슬람국가(ISIS)의 세계관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북부 시리아 다비크에서 벌어질 첫 번째 전투를 시작으로 이슬람이 통치하는 칼리파국의 팽창, ‘다잘’이라는 가짜 메시아 등장,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전 우주적인 승리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묵시론은 예언이 희망을, 정치가 인내심을 잃어버릴 때 나타나고, 묵시론적 정치는 시선이 과거에 고정된 기이한 혁명운동 현상이다. 이것이 생겨나는 것은 사람들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변화의 시대이며, 부당하게 뒤에 처지고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격동 시대에, 이런 천년왕국 종파들은 전염병처럼 확산한다.
이런 현상은 세속적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출애굽 이야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정치에 적용된다. 우선 ‘출애굽 정치’는 그 여정이 길고 방해가 많으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인 ‘메시아적 정치’는 하나님이 가까이서 손짓하고 계신다고 믿어서, 그 마지막 날들에 이르는 테러를 기꺼이 환영하며, 심지어 어떤 범죄든 무릅쓰고 주도하기까지 한다. 묵시론적 정치는 (내적) 변혁 없이 혁명을 꾀하며, 교육이라는 점진적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설득 대신에 심을, 논쟁 대신에 단검을 사용하며 진리의 문제를 가장 초보적인 선택(동의냐, 죽음이냐)으로 단순화시킨다. 시간 한복판에서 지금 당장 구원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정상적인 규칙들을 보류한다.
구원의 열망과 자유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 둘 모두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대단한 위선과 자기 속임수를 초래하게 마련인데, 이 둘은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에 수반되는 것들이다. 배타주의적인 교리는 반대를 인정할 수 없다. 묵시론적 정치는 항상 실패한다. 그 이유는 시간 한복판에서 영원을 창조할 수 없으며, 반대 의견 제시 없이 일치단결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가 최상인 것은 논쟁과 본보기의 힘에 의존할 때고 최악인 것은 힘으로 진리를 강요하려 할 때다.
이슬람의 위대한 사상가 아베로에스(12세기)는 ‘우리가 철학적 주장을 펼칠 때, 항상 반대편의 견해를 인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의 주장이 허약한 것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십 년 뒤 존 밀턴은 언론 자유를 옹호하면서 ‘진리와 거짓이 맞붙어 싸우도록 하자. 자유롭고 개방적으로 맞붙을 대, 진리를 아는 사람이 궁지에 몰리겠는가?’라고 했다. 2백 년 뒤 존 스튜어트 밀은 ‘견해 표명을 금지하는 특정한 악은 인류를 약탈하는 짓이며, 현재 세대만이 아니라 후손들까지 약탈하는 짓이다. 그 견해가 옳다면, 잘못을 진실로 바꿀 기회를 빼앗는 것이며 틀렸다면, 대결을 통해 진실에 대해 더 명백하게 인식하는 유익을 잃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종교가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은 종교가 권력을 포기할 때다. 그래야 종교가 제자리를 찾으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며, 공동체의 양심이 되고, 권력에는 도덕적 한계가 있으며, 국가의 과업은 백성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원히 상기시켜 주는 종교가 된다. 황제와 폭군의 이름은 잊히지만, 예언자들이 주는 영감은 계속된다. 종교가 스스로 권력을 내던질 때, 종교는 진정한 과업인 삶을 변화시키는 일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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