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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어려운 본문들 (2)


(이어서) 근본주의가 확산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전통의 세계와 세속적 영역 사이의 명백한 불화였다. 종교와 사회를 함께 결합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 시작했고 신앙이 더 이상 사회질서나 문화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반대하게 되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예를 들어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원래 미국 개신교 안에서 전통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현대과학과 성서비평 때문에 신앙이 계속 무너져 내리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이다. 정통 유대교나 이슬람에도 전통사회의 세속화가 초래한 깊은 환멸에서부터 근본주의의 에너지가 태동했다. 근본주의는 세상이 그 경전의 말씀을 압도한다고 느낄 때 등장한다. 
유대교의 전쟁 전승을 통해 전통의 작동을 살펴보자. 전쟁 전승은 종교와 폭력의 관계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관심을 갖는다. 우선 주목할 것은 유대교 초기 본문들에 나오는 명백한 군사주의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 깔린 가치는 항상 평화였다. 레위기 16:6에는 평화의 축복이 나오고 민수기 6:26에서는 제사장의 축복도 평화의 기도로 끝난다.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 세상을 상상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 대표가 이사야였다. 그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이사야 2:4) 때를 예견했다. 또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이사야 11:9)라는 비전은, 고대 세계를 지배했던 군사주의 윤리에서부터 히브리성서가 결정적으로 단절하게 된 한 계기였다. 
같은 순간을 묘사한 두 본문의 비교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고대 군사주의에서 평화주의로 바뀌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성전을 건축하려는 다윗을 만류하며 그의 아들 솔로몬이 할 것임을 확신시키는 사무엘기 7:6~7은 하나님에게는 고대 신들을 위해 지었던 것과 같은 기념비적인 집이 필요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은 백향목으로 지은 집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 속에 사신다. 나중에 쓰인 역대기상 22:8에는 더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많은 피를 흘린’ 자는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이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거룩하신 분의 영역에서는 전쟁이 차지할 자리가 없다는 선언이다.
1세기 말 혹은 2세기 초에 랍비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이웃과 원수들에 관한 성서 전체의 율법들을 무효라고 선포한다. 암몬 족에서 개종한 사람이 유대인 총회에 들어갈 수 있는가의 논쟁에 대해 기원전 8세기 세나게립 왕의 정복과 인구 이동 이후 ‘민족들’이란 더 이상 확정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벌인 전쟁에 대해서도 ‘먼저 평화의 조건들을 제시하지 않으면, 어떤 전쟁도 용인되거나 의무적(자기방어)이지 않다’라는 급진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전쟁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니고 단지 평화를 위한 노력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우에만 예외로 전쟁을 인정한다. 파멸시키라는 절대적 명령은 없었고 오히려 평화를 찾아야만 하며 유대인들의 적들이나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하늘 아래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지워버려라’(출애굽기 17:14)라고 명령했던 아말렉은 유대교에서 실제 민족이 아니라, 하나의 은유로서 불필요한 악을 상징하는 것, 우리 각자 속의 악한 성향이 되었다. 자기방어를 위한 전쟁 이외에 모든 전쟁은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니라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되었다. 이 하나의 해석으로 단번에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관련된 성서 본문들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 본문들은 과거 당시를 말하는 것이지 지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 민족을 말하는 것이지, 지금의 민족이 아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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