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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세상" 용례

 

만약 누군가가 셰익스피어의 전기를 쓰려고 한다면 그의 신상정보, 작품에 나타난 됨됨이, 그가 살았던 세상에 관한 세부 지식을 통해 대략적인 초상을 보게 된다. 이처럼 '세상'이라는 용어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 전체를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고 그 시기를 형성하는 데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그 시대에 속한다. 세상이 존재하려면 주인인 사람이나 생물이 있어야 한다. 특히 사교적이고 교류를 좋아하는 인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규모가 크고, 고도로 차별화되고, 언어로 구조화된 공동 세상을 만든다. 

그동안 인간만이 이런 공동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동물이 텃세, 사회구조, 의사소통 등 문화적 전달과 주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간만이 다른 종에 대해 관심과 이론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동물도 그러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돌고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그러므로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어, 의식, 세상이라는, 인간이 위대한 점 세 가지는 동물의 경력으로부터 진화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인간은 자신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 세상은 단순히 인간의 세상이었고, 새로운 대서사는 현대의 인간 자아가 자신의 세상 안에서 태어나고,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는 길고 낯선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세상은 어느 누군가의 일상의 세상(lifeworld)과 자연과학의 세계(universe)로 구분된다. 또 현대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최근 몇백 년 사이에 세상과 우주론의 세계를 동일하게 보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느님의 창조를 우주 탄생의 빅뱅(Big Bang)과 같은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 세상의 감각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으로 경험되거나 관찰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론이 실제 인간의 생활세상에 합쳐진 것이기에 심각한 오해이다. 여전히 훨씬 중요한 것은 생활세상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세상 창조에 대해 말할 때는 우주(the Cosmos), 세계(the Universe), 혹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는 이론상의 어떤 개념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인간 세상을 온전하게 소유하고 누리도록 하셨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적 사고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란 인간이 안정되고 통합된 자아(unified self)가 될 수 있도록, 법에 따라 다스려지는 세상을 지지하며 고대할 수 있도록, 그런 세상이 자신들의 것임을 깨닫고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며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무대라는 것을 알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1인칭 단수였고. "나는 나다(I am), 그리고 이것은 내 세상이다. 이 안에서 나는 내가 계획한 행동을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라고 처음으로 말할 수 있는 분이었다. 역사를 보면 모든 것은 하느님을 통해서만 상상될 수 있었고,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처음에 하느님께 속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차차 우리 자신에게로 넘어왔으면, 결국 우리의 것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님은 무로부터 모든 것을 창조했고, 우리가 서서히 그 모든 것이 되어가도록 했으며, 마침내 자신이 온전한 인간이 되어서 우리 안에서 죽으셨다. 

우리가 상상할 완전히 새로운 대서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통해 혹은 종교를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자신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갈 우리의 삶을 상속받고 그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그렇게 되도록 꾸준히 돕는 분은 하느님이다. 우리가 꿈꾸는 발전된 미래의 모습을 하느님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제시하기 위해, 우리가 하느님을 창조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가 갈망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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