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완결도서 모아보기

[예수와 권세들] [수난을 넘어서] [원복]
[문명의 위기와 기독교의 새로운 대서사]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조회 수 1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new_story.jpg

 

4장   정착하기


성서에는 삼위일체 복수형의 하느님과 단일신 하느님이 나온다. '야곱의 강하신(황소라는 뜻도 있음) 하느님' 호칭에서 동물 토템이었던 시기도 볼 수 있다. 인간, 심지어 어린이를 희생 제물로 요구하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 사이에 나타나거나, 신하들에 둘러싸인 인간 왕처럼 하늘 보좌에 앉은 경우도 있지만, 과거 역사의 한탄스러운 모습을 부정하며 형상을 금지하여, 형상 너머에 완전히 고귀하고 초월적인 하느님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히브리 성경(구약)은 매우 다양하지만, 과거의 대서사는 단일한 정통 신학으로 압축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완전한 오해였다. 새로운 대서사는 성경의 다양성을 모두 활용하여 하느님은 언제나 지속적으로 자기 변화 중이었고,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역사 속에서 우리 자신으로 창조되었는지 발견하게 도울 것이다.

떠돌면서 수렵-채집하고 목축하던 사람이 정착해 농부가 되기로 결정한 때가 인류가 맞은 전환점으로 거의 모든 면을 바꾸었다. 달을 따라 살던 유목민이 해를 따라 사는 농부가 되었고 도시 신전의 제사장이 정한 농사 일정과 축일을 따랐다. 일상의 일정표를 새로 정한 정착은 다른 말로 '문명화'이다. 농장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농부는 시장이 필요하고 농경은 규칙적이다. 유통과 소비를 위해 시장과 신전, 신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왕이 있는 왕궁이 결합한 복합적 중심이 필요하다. 거래를 위한 화폐주조는 로마의 신전에서 유래했고 정치, 일상, 법, 과세 등 도시국가 안의 전체 체계는 제사장이 설계하였다. 즉 신들이 모든 것을 발명한 것이다. 십일조는 첫 번째 지주인 하느님께 드리는 세금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이동식 천막 안에서 살던 과거의 하느님은 사실 모든 땅과 가축의 주인이시니 더는 방랑할 필요가 없었다. 정착할 도시를 선택하고 선택한 백성에게 그 땅을 정복할 힘을 주었으며 기초가 되는 율법을 모세를 통해 주었다. 새로운 성지의 소유자요, 입법자는 하느님이었고 제사장들이 대리하였으며 후에 왕이 그 자리와 권력을 인수했다. 이런 체계에 의해 토지 소유권이 하느님으로부터 군주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보유권자와 소작인들에게 하달된다. 이 과정에서 모계 중심은 부계 중심으로 바뀌었다.

떠돌이가 정착민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서 하느님이 보수주의자의 완고한 저항도 달래가며 인도하고, 결정을 내리고, 벌어질 일을 알려주며 새로운 시대로 억지로 끌고 가야 했다. 도시문화나 문자, 철학이 생기기 전, 아직 자율적 존재가 되지 못한 인간 자아는 삶이 고정된 중심 주변에 정착하면서 비로소 하느님이 한 분이자 법을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에 도달하였고 우주와 사회질서, 시간과 자아에 대해 통합적인 개념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었기에 혁신의 주체인 하느님을 통해 배워야 했던 것이다.

문화가 발전하면서 하느님은 우리를 세우시고는 스스로는 사라지면서 권력을 서서히 우리에게 이양하셨다. 스스로를 비워 결국 죽음에 이름으로써 하느님은 우리를 인간으로 창조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동물에 대한 권리를 아담에게, 출산과 생활의 능력을 아담-하와에게 넘긴 것처럼, 지식과 도덕성을 창조할 능력도 넘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의 형태로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도 그만두셨다. 사회가 규칙화되고 일상화되면서 하느님은 자신이 계시한 율법 뒤로 숨으셨다. 그 체계는 스스로 작동하였기에 하느님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태만해졌고 죄에 빠졌지만, 율법만으로는 완고한 인간 본성을 고치는데 부족했다. 

다시 한번 하느님의 주도적이고 직접적 안내가 필요했다. 이제는 인간의 본성과 하느님의 선(善) 사이의 간격을 메워 좀 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야만 했다. 하느님의 영이 인간 안에 내주하셔야 비로소 온전히 자율적으로 될 수 있다. 하느님은 성전을 떠나 개별 인간의 마음으로 이주할 것이다. 하느님은 더이상 절대 군주가 아니라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급진적 민주화를 기대하신 것이다. 하느님과 개인이 완전히 같은 중심을 가질 때, 하느님과 자아가 일치할 때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종교도 율법도 끝나고 결국 하느님도 끝난다. 멀리 계신 존재로서 하느님의 죽음 혹은 사라짐은 현대적 의미로는 일종의 '인간일원론' 또는 '인간중심론'이다. 

?

  1. 등록된 글이 없습니다.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