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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수는 죽었는가?


예수는 대략 2천 년 전에 살았고 기원후 35년경 팔레스타인의 로마 총독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는 이미 죽은 과거의 인물이다. 그러나 "예수는 죽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간단히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부활하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지금 살아있는가? 신앙인들은 예수가 살아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계신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이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예수는 살아서 죽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간 것인가? 이런 논리는 이상하게 들린다. 
예수가 말하고 행동한 것들, 역사적인 문제들은 매우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삶이 아니라,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죽음은 예수의 삶의 끝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사건의 전반부로서 중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하나님의 우주적 사건을 도외시한다면 예수의 죽음은 그저 무의미하게 끝난 것이다. 즉 "예수는 죽었는가?"라는 질문의 실제 함의는 "그래서, 어쩌라고?"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그의 삶과 무관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복음서는 예수가 그가 말하고 행동한 것 때문에 처형되었다고 전한다. 처형 이후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셔서 예수에게 행해진 불의한 처분을 무효화하고, 예수의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참된 아들의 말과 행동으로 인정하는 도장을 찍으신 것이다. 이런 사고의 틀은 순교자를 다루는 고대의 전통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대의를 지키려는 순교자의 삶이 없다면 순교자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위인의 삶에 대한 조명 없이 죽음만을 기념하고 경축한다면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뿐이다.
그런데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예수와 관련하여 우리가 행해온 것들이다. 사도신경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후 그의 삶을 건너뛰어서 곧바로 죽음에로 넘어간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치 그렇게 죽게 만든 예수의 삶이 없어도 죽음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의 죽음은 진노와 자비 사이에서 갈등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의 용서를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희생제물이 되었다.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이 예수의 죽음이라면, 그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의 처음 친구들과 추종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의 삶의 길에 온몸을 바쳐 헌신했고, 그의 죽음은 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됐다. 그들은 예수의 죽음이나 부활을 그 자체로 중요한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탁월한 능력과 비전으로 채워진 삶,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기억되었던 삶에 적합한 종착점이었다. 사실상 예수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예수의 죽음에 관한 모든 말은 예수가 산 삶의 중요성을 되살릴 수 있도록 짜여졌다. 예수가 시작한 운동을 '참된 길', 즉 삶의 길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 책은 희생자로서의 예수, 순교자로서의 예수, 희생제물로서의 예수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대개의 그리스도인이 부담스러워하는 중세 속죄신학에서 오랫동안 잊혀지고 잃어버렸던 놀라운 것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수의 그 삶이란 사람들이 참된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 그리고 그의 죽음조차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삶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떻게 그들은 예수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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