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완결도서 모아보기

[예수와 권세들] [수난을 넘어서] [원복]
[문명의 위기와 기독교의 새로운 대서사]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하나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


 

조회 수 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sunanb.jpg

프롤로그  한 무명인의 십자가 처형


희망은 항상 역사가 아니며 과장도 아니다. 이 경우, 이전에도 이후에도 종종 그런 것처럼 공포가 역사이다. 
- 존 도미니크 크로산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 예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마치 대서사극처럼 펼쳐진, 예루살렘 입성, 적대자들과 그들에 대한 도전과 그들의 살인 음모, 제자의 배신과 체포, 고문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3일 후의 부활 등 예수의 마지막 날들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를 만들어내기 위해 잘 수행된 성공적인 계획의 결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우리의 대승리이고 경축해야 할 일이지 비극이 아니며, 부활은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의 첫 추종자들이 실제로 그의 죽음을 경험한 형식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 후 추종자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적대감이 컸던, 한 세대가 지난 후의 저자들과 신학자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교회는 항상 이런 전후 문맥을 빼고 철저히 역사적이라고 전제하며 예수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이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결과는 예수 죽음의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는 반셈족주의라는 거짓된 유산과,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닌 신의 죽음에 관한 이 이야기가 돼버려 참된 인간 경험과 연결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역사적 장면 속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결함이 많다. 우리는 이런 성경 이야기들과 전승들이 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시도라는 맥락에서 읽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역사가 아니고 일종의 해석이다. 그리고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죽음 바로 그 사건에서 시작해야 한다.

◆ 십자가 처형  예수가 유월절 즈음 예루살렘에서 로마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명령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십자가 처형은 당시 제국에 저항하는 선동에 개입한 소작농들을 처형하는 로마의 전형적인 국가적 폭력 수단으로, 공포심을 유발하고 겁박하는 최상의 무기였다. 당시에는 아이를 포함한 3천6백 명이 동시에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 즉 예수를 처형한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인이었다. 
이는 예수의 메시지가 종교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당시 황제는 신의 아들로 간주하였고 세금은 제사장에 의해 징수되었기에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제국, 새로운 왕국은 정치적인 체제와 분리된 종교적 선동이 아니었다. 여기에 더해 예수는 로마의 평화에 무모하게 도전했던, 별 볼 일 없는 무명의 한 소작농에 불과했고 하나의 경고로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이다. 죽어가는 과정이나 죽은 이후의 매장 되지 못한 사체 처리 등이 공포감을 더하여 또 다른 선동자의 출현을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십자가 처형  동료들인 장애인, 성매매 여성, 버림받은 사람들, 무두질하는 사람들, 어부들을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무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한 무명인이 성전에서 격노했다. 성전 당국자들과 결탁한 로마 권력은 한 소작농, 무명인에 지나지 않은 그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고문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아마도 시신은 다른 시신들 더미 위에 던져져 개와 새들의 먹이가 됐을 것이다. 교회에 익숙한 경건한 교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뇌와 비통함이 가득한 폭력적 사건이었다. 
이런 죽음 속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예수의 처음 추종자들이 직면했던 도전이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 유대교 전통 안에서 그들이 이 죽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 것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성찰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 이야기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삶의 목적과 절망에서 구해내는 어떤 것으로 만들었다. 별 볼 일 없는 한 무명인의 죽음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

  1. [수난을 넘어서] 1장 희생자 (1)

    1장 희생자 (1) 예수의 개인적인 열망과 희망이 무엇이었든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는 그의 메시지는 그를 승리자가 되게 한 것이 아니라 희생자로 만들었다. - 헬무트 퀘스터 "희생자 예수"(1992) ◆ 제국의 희생자 예수 예수는 세계가 일찍이 경험해...
    Date2022.01.15 By좋은만남 Views10
    Read More
  2. [수난을 넘어서] 프롤로그 한 무명인의 십자가 처형

    프롤로그 한 무명인의 십자가 처형 희망은 항상 역사가 아니며 과장도 아니다. 이 경우, 이전에도 이후에도 종종 그런 것처럼 공포가 역사이다. - 존 도미니크 크로산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 예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마치 대서사극처럼 펼쳐...
    Date2022.01.08 By좋은만남 Views26
    Read More
  3. [수난을 넘어서] 서론 예수는 죽었는가?

    서론 예수는 죽었는가? 예수는 대략 2천 년 전에 살았고 기원후 35년경 팔레스타인의 로마 총독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는 이미 죽은 과거의 인물이다. 그러나 "예수는 죽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간단히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
    Date2022.01.01 By좋은만남 Views21
    Read More
  4. [원복]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6]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에서 보는 죄·구원·그리스도 : 성령신학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6]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에서 보는 죄·구원·그리스도 : 성령신학 종교가 정치와 무관하다는 사람은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Date2021.12.25 By좋은만남 Views27
    Read More
  5. [원복]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5] 자비 : 상호의존과 에로틱 정의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5] 자비 : 상호의존과 에로틱 정의 우리 자신이 가난하고 상처받고 고생하는 이들과 떨어진 것이 오늘날 종교생활의 문제 가운데 하...
    Date2021.12.18 By좋은만남 Views13
    Read More
  6. [원복]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4] 자비 : 상호의존과 경축과 에로스의 회복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4] 자비 : 상호의존과 경축과 에로스의 회복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늘날 사람은 사로잡혀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아직 희망이 ...
    Date2021.12.11 By좋은만남 Views31
    Read More
  7. [원복]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3] 아나윔의 영성 : 여성론자, 제3세계, 평신도 등 억압받는 이들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3] 아나윔의 영성 : 여성론자, 제3세계, 평신도 등 억압받는 이들 억압받는 이들은 주림으로부터의 자유만이 아니라… 창조하고 구성...
    Date2021.12.04 By좋은만남 Views29
    Read More
  8. [원복]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2] 성령의 예언자적 부름을 신뢰함인 믿음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2] 성령의 예언자적 부름을 신뢰함인 믿음 인간 영혼에 관심 있노라고 고백하면서 영혼을 흠낼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에는 관심 ...
    Date2021.11.27 By좋은만남 Views22
    Read More
  9. [원복]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마당 21] 새 창조 : 지구 문명을 창조중인 하느님의 모상들

    넷째 길 새 창조계를 벗 삼기 : 자비, 경축, 에로스적 정의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 VIA TRANSFORMATIVA (변모의 길) 비아 트란스포르마티바의 새 창조계는 새로운 눈으로 죄스럽거나 불의한 관계가 바로잡힌, 고쳐지고 다시 온전해진 우주로, 지혜, 경축, 놀...
    Date2021.11.20 By좋은만남 Views25
    Read More
  10. [원복] 셋째 길 창조성을 벗 삼기, 우리의 신성을 벗 삼기 : 비아 크레아티바 VIA CREATIVA (창조의 길) [마당 20] 비아 크레아티바에서 보는 죄·구원·그리스도 : 부활신학 (2)

    셋째 길 창조성을 벗 삼기, 우리의 신성을 벗 삼기 : 비아 크레아티바 VIA CREATIVA (창조의 길) [마당 20] 비아 크레아티바에서 보는 죄·구원·그리스도 : 부활신학 (2) 온갖 창조적 가능성으로 충만한 인류는 하느님의 작품이다. 인류만이 하느님을 돕도록 ...
    Date2021.11.13 By좋은만남 Views3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Nex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