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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_ 11. 해결책 : 인도주의적 윤리


‘윤리’는 17세기의 영성과 같은 뜻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방향을 정하고, 인도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러므로 영성이나 개인 윤리의 첫 번째 질문은 내 삶에 대한 나의 이해, 내 삶이 속하는 더 큰 생명의 흐름에 나 자신을 연관시키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나의 삶은 선형인 시간 속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다는 삶의 일반조건을 따른다. 여기에 중요한 조건은 취약한 인간 존재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교류의 과정이다. 아울러 전체 생명의 흐름은 무한히 나아가겠지만, 나의 생명은 죽음으로 끝난다. 과거에는 형이상학적 믿음으로 고독을 추구하기도 했지만, 이제 영원한 도리 같은 것은 없으며, 낡은 형태의 금욕주의는 한물간 것이 되었다. 유일하게 남은 종교적 삶은 태양처럼 살아가는 것, 즉 생명의 흐름에 무조건 헌신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삶을 사랑하고 표현하는 삶이다. 영혼을 위해 영생을 얻으려는 낡은 생각을 포기하고 사물과 사람에 대해 좋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려는 생각으로 대체해야 한다. 
여기서 능동적 재평가의 윤리를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 언어에는 은연중에 삶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으며, 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어구로 서로에게 그런 평가를 촉구한다. 그 결과, 각 세대마다 전체 삶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모든 것이 서서히 변화한다. 그래서 가치와 도덕적 실재는 오직 언어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으며 역사 속에서 진화한다. 윤리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지속해서 재조정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과 대중의 안녕을 위해 인류 보편의 삶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데 최대한 기여할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해야 하며, 이런 보편적 삶의 가치는 가능한 한 지고지순하면서도 자체 모순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도덕 원리이다. 여기서 취미, 열정, 사랑, 캠페인이 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공동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일반 원리에도 영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나는 윤리를 외부의 객관적인 것에 두지 않고 그저 인간 삶의 본질인 흐르는 듯한 대화의 교류에 두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선을 행할 수 있으므로 모두를 위한 하나의 표준 도덕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같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측면에서 극도로 불평등하다. 종교, 전통,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힘들은 많은 사람을 속박과 빈곤 상태로 몰아넣으며, 그들의 비참한 상태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성별, 종교, 인종, 피부색 등등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게 우리는 도덕적 의무를 초인간적인 것에 기초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든 인간을 차별하는 것에 기초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덕적 의무를 성병, 인종, 종교, 도덕적 공적과 상관없이 그저 가치를 필요로 하는 공통의 인간성에 기초를 둔다. 과거의 모든 더덕 이론이 그 나름의 전통적이고 객관적인 기초를 잃어버린 허무주의 시대에, 인도주의 윤리만 거의 홀로 상당히 건전하고 순전하게 남아 있다. 내가 제안하는 휴머니즘은 언어를 기반으로 하고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배경으로 한다.
결론적으로, 도덕적 의무를 “성별, 인종, 국적, 종교, 도덕적 공적 등과 상관 없이” 가난한 동료 인간에 대해 부여된 요구사항이라고 본다면, 인간의 동일성에 대한 현대의 개념은 도덕과 무관하고 오히려 유해하다. 인도주의 윤리는 익명성을 좋아하고 동일성을 거부한다. 태양처럼 살아가는 사람의 도덕적 태도와 실천은 특정 종족 집단이나 종교 집단의 신봉자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동일성’ 속으로 한 발 물러서 있는 사람은 모두 보편적인 도덕을 포기한 것이며, 일종의 당파적 근본주의를 선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에 대한 편집증이자 혐오를 의미한다. 태양의 윤리는 실재 속에 또는 순수한 합리성 속에 객관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고, 반대로 주관적이고 감정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태양의 윤리는 확고하게 보편주의로 남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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