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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하느님은 과도기적 대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이 세상이, 우리가 아는 유일하고 실재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130억 년 전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빅뱅과 블랙홀은 매우 유용한 이론이기는 하지만 생활세상, 언어의 세상처럼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우리 삶의 정황이자 환경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새로운 대서사 종교 이야기는 우리 인간의 이상적인 문화, 즉 세상의 발전 역사를 이해하는 형태여야 한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만이 세계상을 구축했고 그것이 사실상 세상 자체이다. 실재 존재하는 것은 현재 세계관, 우리의 관점 뿐이다. 인간 사상의 역사와 모든 이야기는 신들과 하느님의 탄생, 생애, 죽음, 죽음 이후의 이야기로 귀결되고 있다. 

인간은 동물에 비해 성숙해지는 기간이 극단적으로 길다. 1800년 이전까지 인간의 기대수명이 30세였음을 고려한다면, 출생 후 미성숙한 14년을 보내고 결혼 후에는 자녀를 기르는데 남은 인생을 거의 다 보낸다. 삶은 대부분 전통이었다.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문화전통의 전달이 사람이 사는 이유였다. 문화, 전통, 언어, 의식 등은 인간이 경험을 대하는 태도를 동물들과는 다르게 만들어준다. 인간은 동물과 같은 민첩성이나 활기찬 반응은 없지만 언어와 의식 때문에 경험을 덜 중요하게 여긴다. 시간을 갖고 비슷한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고, 가능한 가정들을 재검토하며 의심을 품는다.

난폭한 힘들이 서로 다투는 각축장과 같은 생활세상에서 인간은 자극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반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럴 때 인간은 맹수, 약초, 적 등 각각을 인식하는 표준 이미지(유형, 종, 보편 개념)를 새겨 놓고 그것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표준이 되는 보편개념은 토템(종교), 형상(철학), 종(생물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람들을 집중하게 하는 종교적 대상은 보편적 안내 이미지로 우리의 경험 해석과 성공을 돕는다. 급박한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도록 돕는 문화적 기능이 '기호',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미 설명한대로 토템이 제례와 관련된 각성 상태와 결합하여 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영들은 신들이 되었고 후에 우주 거인같은 신들로 커졌지만 자신들이 유래한 동물에 대한 상징을 간직하고 있다. 기독교인에게 그리스도는 여전히 어린양, 사자, 성령은 비둘기이다. 신이 이렇게 큰 존재가 된 것은 우리를 더 큰 규모로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 같다. 신은 유일신, 우주적 볍률 수여자가 되고 세계와 우리 삶의 전반적인 운영자가 되었는데, 우리는 지금 정돈된 우주론과 큰 규모의 국가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다. 하느님, 세상, 군주, 국가, 종교법 모두가 하나가 되고 있는 중이며 인간 자아도 더욱 통합된다. 

종교적 생각이 이상적인 규범이자 표준으로 언제나 앞에서 이끌었고 물질적 토대가 뒤를 따른다. 하느님은 종교적 생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신이 왕과 법을 세웠고 서서히 인간 왕에게 그 기능을 위임하기로 마음먹었다. 종교는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진보하는 힘이다. 하느님은 아직 상상하기 힘든 미래, 우리가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여기게끔 하는 간접적이고 색다른 선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은 불변·완벽·무한 존재라기보다는 우리보다 한두 발자국 정도 앞에 있는, 변화하는 존재로 보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은 지금처럼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이며 역사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문화 속에서, 여전히 종교가 중요하고 발전하는데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성서의 이야기는 '필요한 신화'이고 하느님은 '과도기적 대상'인가? 유아에게는 실재하는 것이지만, 성인 관찰자의 눈에는 허구적인 것으로 보이는, 상상속의 친구, 편안한 담요, 좋아하는 인형과 수호천사 같은 것이 어린이가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느님도 마침내 불필요한 존재로 사라지고 마는 과도기적 대상인가? 우리는 이제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좀 더 현대적인 '언어'나 '문화'라는 단어로 교체해야 할까? 과거에는 필요했고 유용했던 종교가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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