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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이스라엘의 계약과 예언자적 저항 (3)

◆ 예언자들의 고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메시야에 저항하는 제국의 통치에 반대하여 두 개의 반란을 크게 일으켰다. 이때 다윗은 외국 용병 군대로 그 반란을 진압하여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솔로몬이 권력을 통합한 후에도 북쪽 열 부족은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고 권력을 영속화하려는 이들에 대항하여 계속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실로의 아히야 같은 예언자들은 백성을 탄압하는 왕에게 유죄를 선고하여 반란을 추동했다. 가장 유명한 예언자인 엘리야와 엘리사는 고대 서아시아의 전형적 왕권을 성공적으로 시도했던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대중적인 갱신운동으로서의 저항운동을 이끌었다.
기원전 8세기경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은 저항을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을 만큼 권력을 강화했지만, 예언자들은 ‘야웨의 말씀’이라며 ‘권력에게 진실을 말하는’ 형태로 저항했다.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말라는 계약 계명을 위반하는 왕들과 관리들에게 대한 야웨의 고발과 처벌을 선포한 것이다. 아모스는 농민들을 빚더미에 앉게 만드는 과중한 세금과 조작된 저울로 힘없는 사람을 짓밟고 가난한 사람을 망하게 하면서 저택을 짓고 사치스럽게 사는 사마리아의 부유한 통치자들을 고발했다. 이사야도 가난한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착취하여 땅과 집을 빼앗는 지배층을 고발했다. 부유한 권력자, 통치자들이 농민들에게 행하는 구조적인 착취와 파괴는 오히려 그들이 의존하는 경제적 토대를 약화시켰다. 예언자들은 계속해서 정의를 기반으로 민중들을 위해 세워진 계약 원칙을 멸시하였기 때문에 쇠퇴하는 것이라고 선포했다.
반면 7세기 말에 활동한 예레미야는 군주제와 성전 체제 전체를 고발하며 하나님이 성전을 파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성전 제도와 성전 행사들이 모세 계약과 원칙 모두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왕들이 계속해서 사치스러운 왕궁들을 짓는 강제노동에 민중을 동원함으로 다윗 왕조가 스스로 유죄판결을 했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축복하고 보장한다고 확신하는 왕들이 모세 계약을 무시하며 민중을 억압한다고 폭로했다. 

◆ 다시 고대 근동 제국의 통치 아래로!   유다 왕국의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토대인 민중들을 피폐하게 했고, 그 결과 시골 지역이 약해져 제국의 정복에 저항할 수 없게 됐다. 바빌론 제국은 쉽게 유다를 정복하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했으며 왕국의 관리들과 봉사자들을 추방했다. 앗시리아도 한 세기 전에 북 이스라엘을 정복했다.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제국은 성전국가의 토대인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추방되었던 예루살렘 지배층 일부를 돌려보냈다. 예루살렘 성전국가는 성전과 제사장 정부를 유지하기 위한 십일조, 희생제물만이 아니라 페르시아 황제에게 바칠 조세를 징수하기 위해 세워진 지역 대리 정부였다. 이때의 유대교는 이전과 약간 달랐다. 유다는 여전히 작물을 생산하는 농민과 제국 정권의 조세를 징수하며 세금과 희생제물로 살아가는 제사장의 두 계층으로 이뤄진 사회였다. 즉 군주제가 성전으로 대체되고 야웨도 자기의 집을 짓는 사람들을 위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신’으로 지위가 축소되었다.
유다인들은, 특히 이 시기에 성서 본문을 작성한 엘리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복속되는 것은 묵인하였지만 자신들이 ‘제국의 신들/권세들의 영구적 노예’라는 사실은 부정했다. 초기 예언자들은 민중의 관심을 대변하였지만, 이들 제2 성전기 예언자들은 유다 지배층에 관해 말했다. 유다 지배층은 초기 이스라엘 전통(출애굽과 모세 계약)과 강력하게 동일시했고 흩어진 백성들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희망과 새로운 출애굽을 동경하게 했다. 또 다른 예언자들은 진지하게 이스라엘이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도 계약 백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전했고 일부는 출애굽 이야기와 모세 계약을 자신들과 동일시했다. 이런 태도는 페르시아 제국에 종속된 현실에서 다분히 자기 본위적이었다. 또 제국의 권력과 부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겸손하고 순종적인 지역 지배층으로 남아야 했다. 그들은 제국의 권력자들이 아닌 일명 ‘야웨의 종’이 되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 야웨의 종은 다른 백성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 계약공동체 안에서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게 정의를 구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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