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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천상의 권세들과 민중의 힘 (2)

◆ 계시와 저항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부숴버리는' 무시무시한 네 번째 짐승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증대되는 폭력에 대해 유다 지방 지식인들이 사용한 핵심적 이미지였다. 천상의 권세들과 관계, 역사적 사건에 끼친 영향에 대한 전문가인 서기관들은 유대의 문화 전통에 친숙한 예언자의 역할에 따라, 이 절망적인 상황을 조명해주는 환상과 천상 존재들의 해석을 받았다. 제2 성전기의 유다 서기관들은 하늘의 지극히 높은 이의 법정과 수많은 세력에 대한 문화적 전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헬라 제국들의 폭력과 파괴가 확대되었을 때 하나님의 통치에 반대하여 일으킨 반역의 결과였다고 설명하고 안심할 것을 요청했다.
사해사본에 따르면 '빛의 영'과 '어둠의 영'의 투쟁, 즉 천상의 영적 영역에서 확대되는 갈등은 로마가 유다에서 제국적 지배를 확대하는 것을 반영한다. 유다 지방 서기관들이 쓴 환상 본문들은, 하늘의 황제인 지극히 높으신 이가 제국의 억압만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통제한다는 확신을 제공한다. 제국의 폭력과 착취에 적응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았지만, 유다 서기관들의 환상 이야기는 제국의 군사력과 정치 문화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식이었고 그들 자신을 전혀 희망이 없는 죄인으로 비난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환상 이야기는 피정복지 민중들의 삶을 통제하는 제국의 지배 질서는 필연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않고, 황제는 신이 아니며 침략과 착취는 더 큰 초인적인 권세 체제에 뿌리박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환상들은 서기관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결국 제국의 폭력을 끝장내고, 인간적이며 정의로운 사회를 세울 것이라는 신념 안에서 자신들을 통제하는 제국에 저항하기 위한 확신을 제공해 주었다.

◆ 지식인들의 소외   팔레스타인에서 로마 제국의 통치는 이전보다 더 파괴적으로 변해갔다.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억압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하는 데까지 확대되었다. 처음에 로마는 군사 정복과 억압적인 안보체제로 다스렸지만, 새로운 로마식 도시 건설과 제국의 신전들, 극장과 경기장들, 헤롯의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그 권력을 구현하며 모든 면에서 유다와 갈릴리의 전통에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권력관계 구조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지식인들은 일상에서 그 갈등을 심각하게 느꼈을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교사들은 성전국가를 섬기는 가신으로서 경제적으로 사제귀족에게 의존했으며, 사제귀족은 헤롯과 로마 관리들이 베푸는 권력과 특권에 의존했다. 그러나 유다인의 율법과 전승의 권위 있는 수호자이자 해석자인 서기관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가 모세의 계약 계명이라는 이스라엘 전통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포괄적이었고 백성은 하나님께 배타적 충성을 바쳤다. 로마 통치와 헤롯의 서방화 프로젝트들은 유다인의 율법과 거룩한 전통들에 대한 도전이자 위반이었다. 서기관들은 제국의 정치 현실과의 충돌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지만 기꺼워할 수도 없었다. 헤롯에게 충성 맹세는 하지 않았지만, 그의 통치기구에 봉사하는 것은 동의하였고 그가 죽어가고 있을 때 저항운동을 일으켰다.
첫 번째 저항은 율법교사들과 학생들이 헤롯이 성전 문 위에 세운 로마의 황금 독수리상을 철거하기로 공모했던 사건이다. 지식인들은 헤롯의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가 조상들의 율법을 위반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젊은이들은 체포와 사형의 위험을 알면서도 '우리 조상들의 율법 때문이다'라며 감행하였고 결국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그들의 영웅적인 순교는 헤롯이 죽고 몇 주 후 세금 감축, 대제사장과 핵심적인 헤롯 정권 관리의 면직을 요구하는 예루살렘 군중의 시위에 불을 댕겼고 각 지역에서 올라온 순례자와 군중들이 가득한 유월절에 고조되었다. 아켈라오는 군대를 보내 수천 명을 학살하였지만, 대중적 분노는 격화되었고 지식인들의 순교와 반란이 확산하는 발화점이 되었다. 학자와 학생, 백성은 조상의 율법이라는, 헤롯보다 더 높은 권위에 근거해 봉기하였고 상당히 큰 집단적 힘을 만들어 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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