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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천상의 권세들과 민중의 힘 (4)

◆ 예언 운동과 메시야 운동   역사가 요세푸스의 자료에 따르면 유다와 갈릴리 농민들이 전개한 많은 운동과 반란들 가운데 두 가지 유형이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촌락공동체에서 발전한 대중 전승의 토대 위에서 어떻게 민중이 참여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기원전 4년 갈릴리와 유다, 요르단을 관통하는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들은 모두 대중적 메시야 운동의 형태를 띠었다. 가장 크게 일어난, 66~70년의 시골 출신 민중 집단의 반란은, 지도자 중 하나를 ‘왕’으로 환호하였고 실제 왕관을 쓰고 왕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전통에서 보면 메시야다. 블레셋에 맞선 젊은 목자이자 전사였던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따랐던 것처럼, 그 후손들은 대중적인 인물들을 대 로마 투쟁을 이끌 왕(메시야)으로 환호한 것이다. 농민들은 유명한 강도떼의 수장인 히스기야의 아들 유다, 아쓰롱게스라 불리던 건장한 목자에게 환호했으며 시몬 바르 기오라를 왕으로 추앙했다. 
이 모든 운동은 인접 지역은 물론 유다 중심부와 남부 유다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왕의 요새들과 왕궁, 부자들의 저택을 공격해 재물을 탈취하고 로마와 예루살렘 통치로부터 독립해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자신들의 정치를 펼쳤다. 이들은 폭력적이고 오만했던 로마와 헤롯 정부 관리들, 곡식과 무기를 운반하는 로마 수송대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하기도 했다. 기원전 4년에 일어난 메시야적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는 군단급의 대규모 원정군과 속국 왕들의 보조 군대를 동원하여 북쪽에서부터 갈릴리를 공격하고 나사렛 인근의 세포리스를 불태웠으며 주민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그로 인해 예수가 태어날 즈음 이 지역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로마인들은 반란자들을 검거하여 수백 명을 십자가형에 처해 길가에 매달았다. 그럼에도 아쓰롱게스의 운동은 몇 년 동안 유대 지역 일부를 통제하였고 여러 정책과 해야 할 일들을 논의하기 위해 협의회를 만들어 개최하였다. 66~70년의 반란에서, 시몬 바르 기오라의 운동도 실제적인 독립을 이뤄냈다. 그는 부채 말소와 채무 노예의 해방을 선언했고 예루살렘으로 진입하여 장악했으며 로마에 맞서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다른 모든 저항 집단들과 협력했다. 후에 체포된 시몬은 로마로 압송되어 웅장한 승전식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처형당했다. 
이 운동들은 이스라엘 민중 전통이 고립된 지역의 촌락공동체 안에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블레셋과 맞서 자신들을 이끈 젊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고대 이스라엘의 전통에 대한 기억은 지방 촌락들의 ‘숨겨진 대본’에서 발전했다. 이스라엘을 해방한 영웅에 관한 기억은 헤롯의 폭정 아래서 더욱 강력해졌고 민중들은 분노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였다. 그런 감정들은 이미 메시야 운동의 ‘대본’으로 만들어졌다. 
두 번째 형태는 1세기 중반에 발생한 대중적 예언 운동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임박한 해방의 징표를 보여주는’ 광야로 대중들을 이끌었던 몇몇 예언자 운동들도 로마 총독들에게는 반란 행위로 보였다. 예언자 드다의 운동은 재산을 정리한 많은 사람이 집과 땅을 떠나게 했다. 물을 갈라 해방의 장소로 이동하게 한 이 사건은 출애굽 사건과 더불어 엘리야와 엘리사의 물을 가른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10년 후에는 이집트에서 온 한 예언자가 수천 명을 모아 광야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다. 이 예언자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한 약속 행위는 과거 여리고 성벽 함락 이야기와 유비를 이루었다.
예언자들과 추종자들은, 하나님이 과거 출애굽이나 여리고 성 전투와 유사한 새로운 해방 행동을 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과거의 구원 사건들에 관한 기억은 민중을 새로운 구원 사건을 경험하기 위한 운동으로 이끌었다. 그들은 모두 제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얻은 이스라엘 갱신을 위한 ‘대본’을 알고 있었다. 로마의 지배에 저항하는 예언 운동과 메시야 운동, 공동체적 삶의 갱신은 민중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방식들이었고 결국 66년 대규모 민중 반란으로 비화하였다. 로마는 압도적 군사력으로 갈릴리와 유다 지역을 폐허로 만들고 민중을 살육하고 노예로 삼았지만, 민중 역시 고도로 창의적인 저항과 갱신을 통해 상당한 대항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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