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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1)


친척보다는 조금 더 얽혀 있고, 같은 종류보다는 덜 하다. - 윌리엄 세익스피어, [햄릿](1막 2장, 65행)

정체성, 분리시키고 투사하는 것, 병적인 이원론, 희생양은 일반적인 것으로 아브라함을 영적인 아버지로 섬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특별히 연관된 현상이 아니다. 프로이트는 최초의 폭력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벌어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지라르는 한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자신도 원하는 모방 욕망 때문이라고 보았다.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이 행동은 궁극적으로 ‘그의 기술과 그의 여유’를 원함으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다. 같은 것을 원하는 욕망은 형제자매들 사이의 라이벌 관계가 일차적이다. 
신화와 종교 이야기는 이런 점을 잘 드러낸다. 창세기의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요셉과 그의 형제들, 형제 살인을 한 가인과 아벨 이야기, 이집트 신화의 셋(광야, 폭력의 신)이 형제 오시리스(농업, 내세의 신)을 죽인 이야기, 그리스 신화의 쌍둥이인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 이야기가 그렇다. 햄릿 이야기도 형제살해에서 시작된다. 로마의 창설 신화도 쌍둥이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서로 다투다가 살인이 일어난다. 프로이트도 엄마의 젖과 돌봄을 빼앗는 새로운 아기에 대한 형의 질투와 증오심, 엄마에 대한 원망을 중요하게 보았다.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의식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첫째가 되어 지배하려는 충동과 경쟁은 생존의 본능이다. 새끼들은 재빨리 서열을 확립하고 형제들을 배제하거나 심지어 잡아먹기도 한다. 
요점은 첫 번째 폭력 행위는 형제살해이고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 사이의 라이벌 관계는 인간의 충돌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 관계는 모방 욕망, 즉 형제가 가진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 또는 형제가 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한다.
두 번째 단계는 우리를 유대인 학살 이후로 안내한다. 아내와 딸을 아우슈비츠에서 잃은 역사가 줄스 이삭은 ‘경멸의 가르침’이라 불리는 기독교인의 오래된 반유대인 정서에 대한 증거를 수집했다. 이런 연구는 ‘어떻게 집단 학살이 기독교적인 유럽의 심장부에서 발생할 수 있었는가?’ 질문한다. 결론적으로 유대인 학살은 기독교의 결과가 아니었다. 기독교는 유대인을 보존하기도 했고 대학살에서 구출하기도 하였으며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는 유대인을 구한 많은 기독교인의 기록이 있다. 퀘이커 교도들과 여호와의 증인들, 무슬림도 유대인의 목숨을 구했다. 교회가 유대인에 대해 갖고 있던 적대감의 뿌리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과 상관이 있다. 한마디로 말해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에 관한 이야기다. 이 라이벌 관계는 창세기의 중심 주제이다. 유대교의 핵심 주제였던 이 라이벌 관계는 초기 기독교의 주제이기도 했고 나중에 이슬람이 태어났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바울은 창세기의 형제자매 라이벌 관계를 이용하였다. 첫 기독교인들은 메시야가 오셨다는 믿음만이 유대인들과 달랐다. 선교의 일차적 대상은 유대인이라고 믿었고, 유대인의 율법을 지켜 음식 규정을 따르며 할례를 받았고, 안식일에 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심 후 첫 번째 가장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가 된 바울은 다르게 생각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유대교는 개종까지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많은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사람들은 바울이 율법이 아니라 믿음을 강조하며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할례나 모세의 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했을 때 크게 동조하였고 그렇게 세워진 이방인들의 교회는 탈민족적이었다. 그 결과 바울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차이와 연속성에 관해 설명해야 할 난관에 봉착했다. 바울은 청중들에게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상기시켰지만, 유대인들에 대해 자주 비판적이었다. 그의 삶을 보면 이런 양면성은 불가피했고 그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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