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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형제자매 사이의 라이벌 (2)


(이어서) 바울 당시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기독교’나 복음서, 교리가 아직 없었다(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결정적으로 분리된 것은 기원후 80년대이다). 혹독한 로마의 통치 아래서 유대인들의 세계는 요동치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서로 적대적인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로 분열되었다. 이런 때에 작성한 바울의 초기 편지 중 하나인 갈라디아서 4장 21~31절은 유대인들의 자기이해를 뒤집는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녀들이라고 주장하며 정체성을 구성하지만, 바울은 사라가 기독교, 하갈이 유대교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이삭으로 상징되는 기독교인들은 자유롭지만, 이스마엘인 유대인들은 노예들이고 언약에 속하지 못해 쫓겨나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런 본문을 읽는다면 상속권을 박탈당하고 모욕당하며 정체성을 빼앗기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바울은 지금 아브라함의 언약에 들어가려는 기독교인들은 모세의 율법 규정을 지켜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영향 아래 있는 공동체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바울의 입장에서 이는 기독교에 대한 완전한 오해이다. 새로운 경륜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묶는다는 것을 유대인들이 아니라 기독교를 받아들인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로마서 9장 6~13절에서도 이어진다. 약속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생물학적 자손이라는 조건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지만 언약은 동생인 야곱에게 상속되었다. 이것은 출생 이전에 하나님에 의해 선언되었고 자신들이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유대인일지라도 에서와 같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신앙을 신실하게 지키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미음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이런 주장은 초대 교회 교부들에 의해 더욱 발전된다. 키프리아누스는 '눈이 멀었다'는 주제로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을 새롭게 대조시켰고 막시미누스, 존 크리소스톰, 아프라핫 등은 유대인들이 동생을 죽인 가인으로서 영원한 유배의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까지 이어진 이런 유비는 결국 중세시대에 유대인들을 추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1209년 영국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하기 시작했고 1492년에는 스페인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역사적인 아이러니는 200년 후, 이슬람이 기독교에 대해 취한 태도가 바울이 유대교에 대해 가졌던 태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슬람은 아브라함, 모세, 예수가 모두 이슬람이라는 최종적 계시로 가는 길을 예비한 예언자들이었고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한다. 히브리성서는 유대인들의 거짓으로 만들어졌다고 기독교의 예수에 대한 믿음도 오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원리상 이슬람으로 개종해야 하며 이슬람의 지배와 보호 아래 완전한 시민적 권리를 갖지 못한 하등시민으로 사는 것만이 허락되었다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약속이라는, 똑같은 것을 서로 차지하려는 모방 욕망 때문에 라이벌 관계가 된 형제자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종교나 문명이 아니다. 닐스 보어는 “사소한 진실에 반대되는 것은 거짓이지만, 근원적 진실에 반대되는 것은 또 다른 근원적 진실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에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있을 수 있다. 이 세 종교는 여전히 각자의 신앙이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서로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유혈사태와 적대관계로 치달았다. 아브라함의 세 종교는 구조적 차이점과 내부적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정신의 영토 위에 자신들의 집을 세우려 한다. 예루살렘이라는 성시를 놓고 서로 경쟁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세 종교는 서로 경쟁하는 형제들이고 서로를 근본적으로 실존적인 위협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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