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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이원론 (1)


그가 짐승, 해충, 벌레가 될 때까지 / 그의 온갖 특징을 과장하라./ 그 배경에는 옛날 옛적부터의 악몽들,/ 곧 악마들, 귀신들, 악의 앞잡이들로 채워라. / 네 원수의 모습이 완성되면, / 너는 죄의식 없이 죽일 수 있게 되고 / 부끄럼 없이 도살할 수 있다. -샘 킨, [원수의 얼굴] (1986)

1946년 어느 날, 베두인족 목동이 쿰란 동굴에서 많은 고대의 가죽 두루마리들을 발견한 사건을 시점으로 열한 개의 동굴에서 981개의 방대한 자료를 찾아냈다. 이 필사본(사해두루마리)들은 기원전 3~2세기의 것으로, 타락한 종교 기득권자들이 전복되고 의의 통치가 회복될 날까지 광야에서 은둔하기로 한 작은 분리주의자 공동체이거나 사두개파의 분파, 에세네파 등의 작품일 것으로 추측한다. 이보다 2년 전에 북부 이집트의 나그함마디 부근에서도 열세 개의 파피루스 책을 발견하였다. 이 책은 52개의 초기 기독교 본문의 콥트어 판본으로 도마복음, 이집트인복음, 야고보의 비밀, 바울의 묵시록, 베드로의 묵시록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문서들이 숨겨졌던 이유는 기독교 주류의 믿음과는 급진적으로 다른 신학, 초대교회 주교 이레니우스가 이단적인 문서라고 비난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유대인 전통, 다른 하나는 기독교 전통에 속했는데 전혀 달랐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모두 유일신론이지만 이들은 이원론자들로,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녀들의 전쟁을 묘사하며 빛의 자녀들의 승리와 영원한 평화를 예언한다. 나그함마디 복음서들은 더욱 급진적이라서 성서의 인습적 세계를 뒤집어엎는다. 이 복음서들은 물질 세상의 창조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타락한 천사인 하급신인데 그가 질병과 죽음, 폭력과 고통을 만들었다고 적었다. 그에 따르면 히브리(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복음서들은 완전히 거짓이고 에덴동산의 주인은 뱀이며 예수를 정말로 이해했던 제자는 유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이원론은 유일신론을 따르는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통치 기간에 접한 조로아스터교를 통해서다. 조로아스터교는 초자연적 권능을 빛의 신과 저주받고 파괴적인 영으로서 사악과 죽음으로 가득한 어둠의 신, 둘로 나누었다. 이원론의 또 다른 원천은 고대 그리스, 특히 오르페우스교였다. 타이탄이 제우스의 아들 디오니수스와 싸워 이겨 그를 죽이고 먹어 치우자 화가 난 제우스는 타이탄을 불태워 죽이고 그 재로 인간을 만든다. 여기서는 선과 악 사이가 아니라, 영혼과 몸, 영적 영역과 물리적인 영역의 분리를 주장한다. 이 교리의 요소들은 플라톤 철학에서 지속된다. 쿰란과 나그함마디의 종파는 사라졌지만, 이원론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페르시아에서는 마니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종파가 되었고 그리스에서는 영지주의라고 불렸다. 나그함마디 문서들은 영지주의 복음서로 알려졌다.
이 종파들이 종교와 폭력의 연관성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핵심적 단서를 갖고 있다. 앞에서 폭력이 태어나는 이유가 정체성과 집단 형성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와 ‘그들’로 구분하는 곳에서 폭력이 벌어진다. 그러나 철저한 악이 등장하는 것은 오직 ‘우리’는 완전히 선한 반면에 ‘그들’은 완전히 악하다고 보고,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세력 간의 전쟁을 신호할 때다. 바로 이런 때, 이타주의적인 악이 태어난다.
왜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파 구성원들조차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과 분명히 모순되는 사상에 유혹받는가? 이원론은 현실 세계가 우리가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당위적 세계와 너무나 다를 때, 인지 부조화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될 때 나타난다. 이원론은 “하나님의 완전한 선하심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의 단일성과 전능성을 부인했다.”(역사가 제프리 러셀)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구출하신 역사의 주인이시지만 기원전 2세기에 유대인들에게는 그 위대한 예언자들의 비전이 성취되지 않았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백성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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