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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십자가 처형의 힘 (4)


(이어서) 사도행전 연설들에 실린 보다 이른 견해들 : 사도행전 첫 부분의 베드로 연설들은 예수가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야)로 이해된 것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신원(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씻음)한 후, 다시 살아나 하나님 우편에 앉은 후로 본다. 즉 Q의 연설, 마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의 연설들은 예수와 추종자들이 메시야나 왕으로 주장했기 때문에 처형당한 것이 아니라 부활 후에야 ‘주’와 ‘메시야’로 높여졌으며 이스라엘 통치자들에 대한 저항과 이스라엘의 갱신 운동의 확산, 로마에 바치는 조세에 반대하는 공적 선언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 부활    보편적 신학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처형은 그의 제자들을 좌절시킨 패배였지만 부활현현으로 말미암아 공동체가 형성되고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며 예수운동을 촉진시키는 신앙이 생겨났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구도는 예수운동의 형성과 확장 동기를 부활신앙에 돌리며 하나의 힘으로서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제거했다.
1. 십자가 처형이 제자들을 좌절시키는 패배였다는 주장을 위해 제시되는 자료들은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 마가복음은 예수가 제자들의 도망과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했지만, 도망은 체포에 대한 반응이었고 베드로의 부인은 예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능에 대한 지속적 지적의 절정이다. 누가복음은 엠마로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경험을 나열하지만 ‘실망’이 중요한 주제는 아니다. 요한복음은 ‘유다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아 놓은’ 집에 모인 제자들 이야기를 통해 탄압의 현실을 보도하고 있지만, 시점을 빈 무덤 이야기 후의 상황으로 잡고 있다.
2. 신약성서 본문들에는 십자가 처형 이후에 예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명확하고 일관된 설명이 없다. 빈 무덤, ‘살아났다’, ‘일으켜졌다’는 주장과 여인들에게 나타난 이야기까지 다양하지만, 예수의 부활을 하나의 단독 사건으로 보는 것이나 유대교의 부활신앙과 관련된 본문들은 현대의 합성 개념에 가깝다. 부활의 표준적 개념은 미래의 성취라는 유다적 개념들과 연결돼 있다. 
① 이사야와 에스겔에 죽은 자들과 마른 뼈들의 회생은 유다/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이라는 이미지이지 엄밀하게 말해 죽은 육체의 부활의 이미지가 아니다. 에녹서, 다니엘서, 솔로몬의 시편 등의 환상들도 죽은 자의 특별한 소생이 아니라 백성들의 갱신/회복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 ② 전통적인 생활방식이나 운동에 헌신함으로써 당국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신원의 이미지들이 종종 부활 개념과 혼동죄디만 죽은 자들의 부활과는 다르다. ③ 죽은 자들의 (집단적인) 부활의 이미지는 더 찾아보기 힘들다. 마카비서는 순교한 일곱 형제와 그 어머니, 마태복음은 ‘잠자던 성도들’이 무덤 밖으로 나오는 부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바울도 의로운 믿음의 삶을 산 공동체가 함께 부활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 부활을 제시하며 예수의 부활을 일반적 부활의 ‘첫 열매’로 본다.
다양한 본문이 백성들의 집단적인 회복, 하나님께 헌신함으로 죽은 백성들의 신원, 죽은 자들의 일반적인 부활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할 지라도, 서로 구별되는 이 기대들이 함께 나타나는 일은 드물고 당시 사람들이 폭넓게 공유할 만한 부활 신앙이나 개념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예수 부활과 관련된 다양한 범위와 비전에 관한 언급은 단일하고 일치하며 공통적으로 경험된 사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3. ‘부활’이 예수운동의 형성과 급속한 확장의 동기가 되었다는 근거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수 사역의 주요 아젠다인 이스라엘의 갱신은 모든 복음서에서 이미 진행 중이다. Q연설의 존재는 계속해서 암송하는 운동 혹은 공동체가 있었다는 증거이나 예수의 부활에 대한 어떤 종류의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같다. 마가복음은 젊은 남자가 제자들에게 예수와 제자들이 갱신운동을 시작하고 계속해 나갈 그 갈릴리로 가고 있다고 진술하는 빈무덤 에피소드를 짧게 언급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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