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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십자가 처형의 힘 (5)


(이어서) 마태복음은 빈 무덤 장면에 ‘모든 민족을 제자로 만들라’는 짧은 선교 위임으로 추가하였지만, 이스라엘의 갱신은 예수의 죽음 이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누가는 빈 무덤 이야기에 예수의 환상적인 현현을 추가하나 예수의 역할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사도행전 첫 부분에서 확장될 이스라엘 갱신 운동을 계시하고 가르치는 것에 영감을 제공한 것도 ‘부활’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었다. 요한복음은 몸의 부활 현현 이야기를 길고 분명하게 진술하는 유일한 복음서이다. 이 그 공동체는 고별설교 이후 이미 권능을 받고 형성되어 진행 중이었다. 사도행전의 연설들도 부활 신앙이 예수운동의 급속한 확장을 이끌었다고 제시하지 않는다. 부활은 예수에게 천상의 직분을 맡기는 것이며, 그 이후에 예수가 시작한 이스라엘 갱신이 계속되고 확장된다는 가장 중요한 사건에 대한 보조적 조치이다. 이 모든 자료는 예수가 시작한 운동이 그의 십자가 처형과 신원/부활/현현(들)에 이어 계속된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부활’이 그 운동의 형성이나 확장을 이끈 결정적인 경험이나 사건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 돌파구    최초의 복음서 자료들은 십자가 처형이 통치자들과의 대결로 시작된 예수운동의 확장에 동력을 제공하고 헌신과 연대를 고무시키는 힘으로 변형시키는 역사적인 돌파구를 열었음을 보여준다. 로마와 헤롯의 가혹한 통치와 조세, 십일조는 갈릴리와 유다인들의 격렬한 분노를 일으켰고 이방 제국 통치에 대한 저항과 구원이라는 이스라엘의 전통과 공명했다. 예수는 정의로운 계약공동체라는 이스라엘 전통에 머물지 않고 민중의 열망을 깨우치고 치유와 축귀로 삶을 회복시키며 힘을 불어넣었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질서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소망과 약속은 백성들의 분노를 증폭시켰고 갈릴리와 외곽 촌락들에서 상당한 사회정치적 힘과 추진력을 발생시켰다.
예수가 해방축제일에 성전에서 로마제국 권세의 대리인인 대제사장들에게 했던 강력한 시위는 억압받은 대중의 분노를 표출하는 돌파구가 되었다. 자기-억제를 위해 사용되었던 민중의 에너지는 갱신과 저항 운동을 확장하기 위해 방출되었다. 대담한 예언자적 대결은 십자가 처형을 초래했지만, 집단적 분노는 더욱 큰 힘으로 변형되었고,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처형을 용감하게 견뎌낸 이 예언자적 지도자는 더 큰 저항과 변함없는 헌신을 하도록 고무했다.
복음서의 연설들은 추종자들이 예수와 자신을 동실시 했음을 보여준다. 예수는 민중과 소통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고 그 가르침이 추종자들과 계속해서 공명했기 때문에 길고 짧은 연설들이 공동체에서 암송되었다. 이는 결코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들 혹은 추종자들의 운동들과 관련된 예수의 모습을 전제한다. Q연설들은 통치자들에 저항한 결과로 발생한 예수의 죽음이 그의 운동의 정체성 안에 뿌리내린 방식을 보여준다. 연설들은 추종자들이 예수처럼, 법정에 끌려가 거기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충성을 선언하고 그 일로 인해 야기될 일들을 겪을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마가복음의 예수가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잔을 나누며 ‘나의 언약의 피이다’라고 한 것은 옛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재연한 것이다. 십자가 처형은 모세 계약의 갱신을 봉인한 사건이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민중을 갱신하는 예수의 프로그램을 계속했을 뿐만 아니라 탄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통치자들에 저항한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한 방식을 취했다. 마가복음은 공동체가 갈릴리로 돌아가 민중 갱신 프로그램을 계속할 때 예수가 그들을 만났다고 보도한다. 마가복음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여전히 예수의 가르침과 공명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며 민중 갱신 확장을 위해 헌신하는 공동체의 적극적인 기억을 통해 구성되었다. 예수는 일시적으로 포기한 가족들과 땅을 회복할 것이라 안심시키며 백배의 보상이 지금 이 세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선언하지만 평화와 안식과는 거리가 먼 ‘박해가 따르는’ 지속적 투쟁이 요청된다. 이것은 십자가 처형에 직면하게 되지만 제국 질서에 저항하는 운동을 계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심판을 통해 신원하시고 권능과 더불어 직접 통치하실 것임을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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