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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예수와 권세들의 투쟁


현대 서구사회의 개인주의적 사고 습관들은 예수를 자율적인 개인, 종교적 인물로만 봐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었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를 제한했다. 추종자나 적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반응했는지에 대한 탐구, 생활환경 안에서 이해하려는 대안적 시도로 예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것은 고대 사회와 문명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권세들, 즉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폭풍-왕과 가나안 도시 국가들의 주 폭풍(바알), 로마제국의 주와 구원자인 카이사르 같은 권세들과 민중들과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것이다.
이 권세들은 문명화된 삶을 가능하게 하는 풍작과 생산, 정치·경제적 안정과 조직의 힘들을 포함하며 경제적인 요구, 정치적 위협을 가할 수 있었고 대리인들을 통해 질서를 강요하고 생산과 노동을 착취하였다. 이 권세들은 또한 종교적으로 표명되는 권세들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권세는 예속민들에게 착취한 생산과 노동으로 지탱되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증대되고 강화되었으며 권력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관계적 방식이었기 때문에 예속민들은 제도화된 권세에 의지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탈출할 수 있었고 권력 구조의 위협을 약화시켰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파라오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자신들을 해방하고 중앙집권화된 문명의 권세들을 섬기는 것을 금지하며 민중의 생계를 보호하는 원칙들을 천명한 야웨의 직접 통치 아래서 서로 돕고 협력하는 대안적 사회경제 질서를 세우는 문화 전통에 따라 구별된 역사를 펼폈다. 예수는 민중 가운데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반(半) 독립적이며 반(半) 자치적인 이스라엘 촌락공동체 안에서 선교하였다. 그들은 출애굽과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하며 계약의 원칙들을 끊임없이 가르침으로써 독립적인 삶의 존엄성에 관한 기억과 신념을 강화했다. 그리고 예수는 예언자 전통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는 선포를 통해 그 열망들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했다. 이 선언은 매일의 양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고 쇠잖게 하는 빚을 면제받는다는 구체적인 의미로 전달됨으로 사회경제적인 현실이 되었다.
예수가 행한 ‘부정한 영들’의 축출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지이다. 특별한 영들의 축출은 사로잡힌 개인들만이 아니라 민중 전체의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갈릴리인들은 예수의 축귀에 대한 반응으로, 예루살렘 대제사장들의 권위 있는 서기관 대리인들과 대조하면서 권능을 가지고 그 일을 행하는 자로 선언한다. 예수는 예속민들에게 신적인 권세를 중재하는 권능의 행위를 통해 민중 가운데 힘을 발생시켰다.
카이사르와 헤롯, 성전에 바치는 세금과 제물은 삶을 위한 자원들은 감소시켰다. 영양실조만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악화시켰고 빈곤층이 된 민중은 굶주린 이웃 지원은커녕 빚 문제로 서로 다투기 시작하여 촌락공동체는 붕괴되었다. 이때 예수는 전통에 따른 모세 계약 갱신을 주장하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리라는 축복을 선포했고 그것을 듣는 공동체는 실행했다. 민중은 이제 하나님이 자신들을 다시 구원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공동체 이웃의 복지를 책임지고 상호 지원 유지의 계약 원칙들에 다시 헌신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계약 갱신은 민중이 지역적 연대의 힘 창출을 의미했고 착취에 저항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 
예수는 마침내 수도 예루살렘에서 공개적으로 통치자들에게 도전했다. 반란이나 무장 폭동은 아니었으나 대제사장의 통제와 로마제국의 질서를 위협하는 대항적 힘을 발생시켰다. 해방 축제인 유월절에 성전과 대제사장직에 대한 예수의 유죄 선고는 민중의 집단적 분노를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분노의 힘을 갱신과 저항 운동을 위한 집단적 힘으로 바꾸었다. 예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갱신과 저항의 돌파구였고 부활은 운동을 형성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갱신 운동의 예언자적 지도자는 고통스러운 처형을 용감하게 받아들였고 추종자들은 지도자와 동일시하면서 보다 큰 저항과 헌신을 고취했다. 예수의 선교는 이스라엘 민중의 열망 성취, 즉 하나님이 다시금 자신들을 구원하여 존엄한 삶을 회복해 주리라는 확신에 뿌리내린 민중 가운데 집단적 힘을 발생시켰고 하나님의 직접 통치를 받는 대안 사회로 다시 활력을 얻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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